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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제일 많이 찾아갈 만한 곳은 화성행궁이다. 수원시에서 제일 많이 내세우는 관광명소이기 때문에 행사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물론 사람도 많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따가운 온도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오후 늦은 시간에 집에서 출발했다. 버스정류장에서 5분정도 기다리다가 만석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굽이굽이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거나 직접 운전을 했으면 30분도 안걸릴 거리였지만, 버스 대기시간까지 포함해서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수원시의 대중교통은 매우 불편하다. 모든 버스가 영통과 팔달문과 수원역을 지나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할 정도다. 배차간격도 길고 버스도 몰려다닌다. 운수회사들이 황금노선을 서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번호가 다른 노선이 같이 몰려 다니며, 마치 마을버스처럼 거의 모든 아파트 단지를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 직선으로 하면 훨씬 빠른 길이지만 굽이굽이 한참을 돌아서 간다. 좋은 점도 있다. 인계동에 가려고 할 때 어떤 버스를 타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정류장에 서는 5개 노선이 전부 인계동으로 간다. 다만 함정이 있다. 수원시의 버스는 배차간격이 있고 몰려다닌다.

버스가 오래 걸리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떄문에 오늘은 대수롭지 않았다. 어차피 그걸 이미 알고 있었고 오늘은 그렇게 완행열차같은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자3동 번화가 정류장에 내렸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고 커다란 상가건물들이 있었다. 그 상가에는 수 많은 학원과 군것질거리 가게들이 즐비했다. 핫도그 줄에 서서 쌀핫도그 하나를 주문했다. 천 원이라서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받아들고 보니 딱 맞는 가격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았다.

핫도그를 들고 만석공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교차로 한 개를 지나자 만석공원이 나왔다. 구글 지도에서 본 모습대로라면 꽤 예뻤을 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이나 산책하러 나온 동네 주민들이 바글바글한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었다. 벚꽃이 화려하게 핀 4월이었다면 사진 속 모습처럼 아름다웠겠지만, 모든 것이 초록색인 5월이었기에 그런 느낌은 없었다. 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무와 나무와 또 푸른 나무가 있는 공원이었다.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공원이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선사유적지, 올림픽공원, 청계천 수변도로를 지겹도록 보았기 때문에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저수지 혹은 연못을 반바퀴 정도 돌아서 바깥으로 나갔다.

걷다보니 KT야구장이 보였다. 그래서 지도를 보니 우만동이 가까웠다. 그래서 그냥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어쩌다보니 창룡문에 도착했다.

창룡문을 통과하지는 않고, 위에 사진처럼 차가 다니도록 성벽을 뚫어 놓은 곳을 통해 행궁 안으로 들어갔다. 창룡문은 사진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기구가 떠있는 쪽에 있다. 터널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른 쪽에 연무대가 있었다. 그리고 왼 쪽에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천천히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연무대 옆 주차장에 철쭉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뒷 편에 하얀 조약돌이 배경을 만들어 줘서 더욱 꽃이 돋보이게 만들었다. 철쭉이 핀 주차장을 지나자 마을이 나왔다. 행궁을 몇 번방문했지만 여기에 주택가가 있는 줄은 몰랐다. 조용했다. 주택들 사이 벽에 아기자기 예쁜 벽화들이 있었다. 행궁동 벽화마을은 가봤지만, 연무대 옆 골목에도 벽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벽화들을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재밌는 그림, 예쁜 그림도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오동동 살찐 분홍새가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그림을 정면에서 보면 통통한 새를 만날 수 있지만 골목 입구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면 분홍새가 그렇게 뚱뚱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투시법을 미리 고려해서 일부러 살찌게 그린 것일지도 몰랐다.

벽화들을 지나오니 행궁 파출소가 나왔다. 이색적인 파출소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에 담기 위해 애를 썼다. 전체가 잘 보이는 구도를 찾느라 이리저리 움직였고, 지나가는 차나 사람이 안나오도록 요지부동 안움직였다. 행궁의 느낌을 살려 기와지붕의 파출소를 만든 것이 좋았다. 단순히 기능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부여하는 건축을 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행궁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깊었다. 그런데 몇 장의 사진을 찍다보니 왠지 냉면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성 안에 있으니 궁궐을 본뜬 파출소라고 자연스레 이야기가 만들어 진것이었다. 어디 엄한 곳에 있었다면 그냥 냉면집일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환경에 따라 배경에 따라 보는이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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